-- 류 시화
서귀포 바닷가 산책 중에 어린 소년과 노인의 대화를 들었다. 소년은 친구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말하면서 노인에게, '할아버지도 곧 죽을 것인지' 물었다. 만약 그렇다면 함께하고 싶은 일이 많기 때문에 '늦기 전에' 해야 한다고 소년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인은 웃으면서, 곧 죽을 것 같지는 않지만, 늦기 전에 그 모든 일들을 함께하는 것이 옳은 생각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들의 얘기를 엿듣는다는 의심을 사지 않도록 계속 걸어가야 했기 때문에 이후의 대화는 들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늦기 전에' 많은 즐거운 일들을 함께하기를 기원할 뿐이었다.
책과 인터넷에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지막 후회에 대한 글들이 많다. 너무 늦어서 시도할 수조차 없게 된 일들에 대한 후회가.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걱정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에게 의미 있는 일들을 더 많이 선택했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신경 쓰느라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했다.'
'감정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시키지 말았어야 했다.'
'안전지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다.'
우리 모두는 대부분 같은 것을 후회하며 다른 사람들의 후회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그런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계속 미루는 걸까?
로스앤젤레스의 병원에서 말기 환자들을 돌보는 티베트 승려 텐진 키요사키는 시한부 환자들이 '자기 마음속의 사랑을 나누지 않았다.'는 것을 후회한다고 전한다. '나는 냉담했고, 차가웠고, 무신경했고, 대화를 멀리했으며, 거리를 두었다.'는 후회이다. 그렇게 해서 스스로의 가슴 안에 얼음 바위가 들어앉게 되었다. 또한 마지막 순간에 사람들의 가장 큰 후회는 '용서하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가 말했듯이, 우리는 불붙은 석탄을 손에 쥐고 누군가에게 던지려고 하지만 화상을 입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또 다른 호스피스 간병인 브로니 웨어가 쓴,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의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 속에서 한 여성은 울면서 고백한다.
"나는 거창한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하고 싶었던 것들을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살 수만 있었다면 더 행복했을 것이고, 수십 년 동안 나의 가족에게 불행이 스며들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에게 진실하다는 것이 타인에 대해 배타적인 생각을 갖는 것이 아님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모든 것이 나의 선택임을 더 일찍 알았더라면, 두려움에 맞서 모험을 시도했더라면, 현재의 순간을 더 많이 살았더라면, 더 많이 사랑했다면......
우리는 불완전하고 허약한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의 후회를 다 담으려면 큰 그릇이, 절망의 바다에 가라앉지 않으려면 큰 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단순한 소망들의 실현만으로도 새로운 삶을 향한 희망이 시작된다. '인생을 다시 산다면' 하고 말할 필요가 없다. 다시 살기 전에 지금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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